본문 바로가기

주파수가 뭐기에! 주파수 전쟁이 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118년 전인 1895년 6월 5일, 이탈리아 블로냐의 한 언덕에서 젊은 물리학자가 금속판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금속판은 유도코일을 통해 공중 선과 연결되어 있었지요. 맞은편 언덕에서 열심히 기기를 조작하던 그의 조수는 순간 벌떡 일어나 허공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보내온 신호를 잘 받았음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인류가 전파로 의사소통을 한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마르코니의 무선통신기기>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서 1901년 12월 12일, 마침내 캐나다에서 대서양을 건너 무려 1,600마일이나 떨어진 영국에 전파를 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본격적인 무선통신 상용화의 시작이었죠. 바로 이 과학자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물리학자인 귈레모 마르코니입니다.

 

그 후로 단지 푸르렀던 하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전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무선통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휴대전화나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죠. 심지어 TV 리모컨도 무선통신의 산물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신호가 겹치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주파수 덕분입니다. 이는 각각의 전파가 진동수, 파장, 진폭이라는 고유의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정해진 규칙대로 신호를 보내고, 이를 받아 해석하는 것이 바로 무선 통신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주파수는 바로 무선통신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파수는 무선통신의 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물리적인 것이 그러하듯, 주파수 역시 제약이 있습니다. 특히 주파수의 이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대역(Band)이라는 녀석입니다. 주파수를 길에 비유한다면, 대역은 바로 그 길의 폭을 말합니다.

 

우리가 쓰는 도로 역시 인도와 차도로 구분하고, 차도 역시 차선을 그어 차종과 속도에 따라 좀 더 원활한 교통 소통을 유도합니다. 만약 그런 차선이 없다면, 아무리 도로가 넓어도 제 속도로 차가 다닐 수 있을까요? 속도는 고사하고 교통사고 걱정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주파수 관리에 정부가 나서는 이유도 바로 이렇게 주파수가 누구의 사유물이 아닌 공공의 재산인 까닭에 더욱 효율적인 관리를 하기 위함입니다.

 

이슈는 1.8GHz

 

요즈음 주파수의 이슈는 흔히 황금 주파수라고도 일컬어지는 1.8GHz를 누가 쓰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이 주파수 대역은 외국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롱텀에볼루션, 즉 LTE 서비스에 주로 쓰고 있는 대역 대입니다. 그런 까닭에 로밍 서비스 활용이 쉽고, 이미 검증되어 누구나 눈독을 들이는 것입니다.

 

문제는 같은 전화번호를 두 사람이 함께 쓰지 못하듯, 아무리 황금 주파수라고 해도 통신사 여럿이 함께 쓰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쓰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자원은 한정되다 보니 당연히 다툼이 일어나고 말도 많습니다. 총만 안 들었지 이동통신사의 1.8GHz대 주파수 쟁탈전은 거의 전쟁에 비유될 정도입니다.

 

맛있는 한우도 특히 안심과 등심이 유독 인기 있듯, 1.8GHz 대역에서도 10MHz, 그러니까 1.83~1.84GHz를 두고 쟁탈전이 심합니다. 이 비어있는 1개 주파수 대역을 어느 사업자에게 할당할 것인가의 문제의 핵심입니다. KT는 기존 1.8GHz 대역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주파수와 인접한 10MHz의 주파수 대역인 D블록에 쓰고 싶어 합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 대역폭을 KT에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가지고 싸운다고 해도 절대 지나치지 않습니다. SK텔레콤은 약 40MHz, 엘지 U+역시 약 40MHz를 LTE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KT는 좀 더 넓은 50MHz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 얼핏 보면 비슷한 대역폭, 그러니까 이동통신 3개 회사가 비슷한 도로폭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 않은 것이 바로 주파수의 숨겨진 비밀입니다.

 

바로 그 마술사는 대역폭, 즉 광대역 (Broadband) 때문입니다. 광대역, 즉 브로드밴드는 말 그대로 고속도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LTE 주파수는 주파수 대역폭에 통신 속도가 큰 영향을 받습니다. 흔히 말하는 3G는 주파수 대역폭이 넓든 좁든 통신 속도가 일정한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즉, LTE에서는 만약 대역폭이 두 배로 늘어나면, 통신속도 역시 비례해서 빨라집니다. 신기하죠? 현재 이동통신업체들이 LTE 광대역이라고 선전하는 40MHz 주파수 대역의 경우 최대 150Mbps의 통신속도가 됩니다. 이 속도가 얼마나 빠르냐 하면, LTE 최고 속도인 75Mbps보다는 정확히 두 배이고, 심지어 유선 통신속도보다도 빠른 통신을 할 수 있습니다.

 

▶진짜 LTE가 온다, LTE Advanced란 무엇인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동통신 3사가 쓰고 있는 LTE 주파수 내역을 보면, LG U+가 800MHz 대역을, SK텔레콤이 850MHz 대역과 1.8GHz 대역을 쓰고 있습니다. KT는 1.8GHz 대역을 쓰고 있습니다. KT로서는 이 인접 대역을 포함한 1.8GHz 주파수를 손에 넣으면 지금 쓰고 있는 주파수가 바로 붙어 있으니 쉽고 빠르게 LTE 전용 고속도로를 갖게 되는 셈입니다. 단지 넓은 길을 갖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속도까지 빠른 길을, 그것도 적은 구축비용으로 꾸밀 수 있으니 사활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SK텔레콤이나 LG U+는 어떨까요? 지금 쓰고 있는 LTE 주파수 대역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만약 1.8GHz 대역을 손에 넣는다 하더라도 KT와 같은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KT가 잘 되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 vs 자원 효율성

 

만약 1.8GHz를 KT가 갖게 된다면, KT는 약 5천억 원 정도를 투자해 6개월이면 LTE 광대역 전국망을 구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LG U+나 SK텔레콤이 이를 구축하는데 시간은 약 28개월, 비용은 최대 3조 3천억 원을 쏟아 부어야 같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공정한 게임이 되지 않으니 이를 KT에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두 회사의 입장입니다.

 

반대로 KT는 자원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기왕에 쓸 주파수라면 근처에 이미 주파수를 쓰고 있는 자신들에게 할당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죠. 주파수를 조각내는 파편화보다는 효율성을 우선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쉽고 편한 구축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려면, 황금 주파수인 1.8GHz는 KT에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심판이라 할 수 있는 정부 생각은 어떨까요? 어렵게 만들어진 미래창조과학부가 바로 담당부처입니다.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하니 지금 한참 논란이 되는 1.8GHz는 빼놓고 다른 주파수부터 3개를 먼저 할당하거나, 아니면 3개 주파수를 이동통신 3사에 경매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주파수 경매는 진행했던 경험이 있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3개 주파수와 인근 주파수까지 묶어 할당하거나 경매를 하는 방안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LTE 가입자는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30%가 넘어섰습니다. 트래픽으로 따지면 약 60%에 이를 정도입니다. KT가 2G 서비스를 종료한 것처럼 언젠가는 3G 역시 역사의 뒷길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이동통신 소비자의 대부분이 LTE를 쓰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1.8GHz를 두고 싸우는 LTE 주파수 전쟁이 다시 한 번 재현될지도 모릅니다.

 

한 번 정책이 정해져 주파수가 확정되면, 그 파급효과는 대단합니다. 지금도 SK텔레콤과 KT 고객은 쓰던 단말기를 유심만 변경해서 번호이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LG U+ 고객은 유심이동을 통한 번호이동이 안 되지요. 주파수 대역에 따라 소비자들도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주파수 정책은 단순히 지금 쓰고 있는 단말기를 이동통신사를 바꿔도 쓰지 못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주파수 경매에 들어가는 비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각종 설비와 투자는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입니다. 게다가 한 회사가 아닌 3사 모두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해야 합니다. 결국, 그 비용은 요금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에게 부담됩니다. 정부의 미래를 내다보는 공정한 주파수 정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특정 이동통신사의 이득보다는 전체적인 산업을 내다보았으면 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에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나 이동통신사가 아닌 소비자입니다. 결국, 소비자의 지갑에서 비용이 나갑니다. 얼핏 보면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해당 이동통신사와 그 회사 사용자들의 이익은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두 회사 가입자들의 손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처럼 번호이동이 활발한 시장에서는 언제든, 지금의 이익이 미래의 손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 특정 이동통신사가 비용을 절약하느냐가 얼마나 효율적이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동통신 회사 모두가 얼마나 안정적인 광대역 서비스를 할 수 있느냐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