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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타임] LTE와 그리움 - 한겨레 신문 구본권 기자

 

 

서울 시내 오래된 냉면집과 곰탕집을 즐겨 찾습니다. 입에 맞고 변하지 않는 맛도 좋지만, 이곳에 모여드는 어르신들의 식사하시는 풍경이 좋아서입니다. 도심은 여러 차례 새 건물로 모습을 일신했지만 젊은 시절 드나들던 식당이 그 때 그 맛을 제공해주니 어르신들이 그 때를 아는 벗들과 찾는 것이지요. 변하지 않는 풍경은 정겹습니다.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황현희씨가 전통문화 지킴이로 나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 다 사라졌어. 이거 죄다 어디 갔어”라고 추억을 되새기는 ‘위대한 유산’이란 코너를 흥미롭게 봤습니다.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지정해 보호해야 할 것은 아니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알게 모르게 사라져버린 게 숱하게 많고, 그 때를 아는 사람들끼리 ‘공감’한다는 내용입니다.

 

황현희씨가 휴대폰을 소재로 다루면 세대별로 공감의 정도가 크게 차이 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 다 어디 갔어. 삐삐 이거 어디 갔어? 애인한테 1004, 8282 암호 치던 거 생각나잖아?” 하고 나타날 것 같습니다. 사장님 차에 달려 있던 카폰, 무전기만하던 초기 휴대폰, 폴더폰, 슬라이드폰 등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휴대폰만큼 변화와 혁신이 빠른 소비재 상품도 드뭅니다.

 

국내에서 LTE폰이 워낙 빠르게 확산되다 보니 드는 생각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LTE는 가입자 증가 속도에서 3G 때보다 약 2.5배 빠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약 1,000만 명을 돌파한 전 세계 LTE 가입자의 30%가량이 한국인이며, 연말이면 국내 가입자는 1,500만 명을 돌파할 기세입니다. 그야말로 빨리빨리 문화의 본고장에서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LTE가 빠르게 통신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는 현상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이 눈에 띕니다. 과거의 통신기술이나 단말기 등이 대세가 된 LTE 제품과 서비스에 밀려나는 것이지요. 그다지 그리울 것 없는 것들이지요.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확산에 따라 점점 축소되어가는 영역이 있어 아쉽습니다. 그리움입니다. 과거엔 너무 멀리 있어서 닿을 수 없거나, 그 상태를 모른 채 애태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항구의 이별’이나 ‘먼 곳의 님’은 가요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요에서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닿을 길 없이 가슴만 졸였던 얘기는 줄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쉽고 빠르게 닿을 수 있는데, 닿지 못해 그리워할 일이 적다는 거지요.

 

 
기술의 변화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이 달라질 뿐, 우리 마음은 변화하는 게 아니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요즘 10대, 20대가 과거와 달리, 편지를 쓰는 법도 없어 책을 읽는 시간도 크게 줄었다고 개탄하곤 합니다. 하지만 지금 10대는 인류의 어떤 시기에 존재했던 세대보다 왕성한 문자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무료문자 메시지 도구를 이용해 하루에 수백 통의 문자를 보내고, 종이신문을 보지 않지만, 훨씬 더 많은 뉴스와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본다는 거지요.

 

 

새로운 통신기술이 기다림이나 그리움을 축소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그 맞은 편에는 상대와 더 많은 소통을 이끌어내어 더 깊고 풍부한 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라 낙관적 기대가 있는 거지요. 빨라진 통신환경에서 새로운 형태의 그리움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합니다.

                                               

                                                                                                                          구본권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