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용어 중에 '게임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통신 시장은 게임 이론 중에서도 '제로섬(Zero sum game)'이자 '치킨 게임'에 해당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제로섬 게임은 한 사람이 이득을 보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되고, 결국 둘의 합은 0이 된다는 원리입니다.
현재 통신 가입자는 포화 상태입니다. 더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면 이제는 서로 뺏고 뺏기는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통신 이용자가 1,000만 명이고 이동통신 사업자 A, B가 있다고 가정할 때 A가 7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면 B는 300만 명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만약 각고의 노력 끝에 B가 400만 명의 가입자를 추가해 700만 명의 이용자를 가지게 됐다면, A의 가입자는 300만 명으로 줄어들 겁니다. 우리나라 이통 3사는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거 서로 가입자 뺏기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누군가 가입자를 얻는다면 누군가는 잃게 되겠죠.
그러나 불행히도 가입자가 그냥 얻어지지는 않습니다. 마케팅비 등 자금을 대거 쏟아 부어야 하죠. 바로 치킨 게임을 하게 됩니다.
치킨 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에서 이름을 따론 게임 이론 중 하나입니다.
한밤 중에도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돌진해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입니다. 핸들을 먼저 꺾은 사람이 겁쟁이가 되죠.
경제적으로 말하면, 먼저 핸들을 꺾은 사람이 경쟁에서 지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도 쉽게 핸들을 꺾을 수 없는 겁니다. 보조금 경쟁에서 쉽게 발을 빼지 못하는 이통사가 연상됩니다. 그런데 두 차량이 끝까지 핸들을 꺾지 않는다면? 둘은 모두 승리자가 되지만 두 차량이 충돌해 두 사람 다 중상 내지 사망하게 될 겁니다.
보조금 경쟁을 계속하게 되면? 가입자를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 속에 모두 망할지도 모릅니다. 한 쪽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상처뿐인 영광일 테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둘 다 멈추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기엔 상대방의 맘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나 혼자 멈추고 손해를 볼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이통 3사는 쉽사리 보조금 경쟁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변수가 생겼습니다. 정부가 강력한 보조금 규제로 말하자면 치킨 게임을 못하도록 한 겁니다. 요즘 단속의 눈길이 매섭다 보니 뒷골목에 숨어서 게임을 벌이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통 3사의 보조금 경쟁 감소로 이들의 수익구조가 개선되고 있다는 겁니다. 가입자도 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누군가는 잃으면 누군가는 따야 정상일 텐데 말입니다.
망 고도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G 서비스가 4G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로 진화하면서 고객 가입 숫자가 아닌 서비스의 불륨을 키운 겁니다. 망의 고도화로 새로운 수익원을 만드는 셈입니다. 여기 다시 게임 이론을 대입하자면, 제로섬 게임을 서비스 개선을 통해 논 제로섬 게임(Non Zero sum game)으로 만들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먹거리가 커지면 이통 3사의 배를 좀 더 불릴 수 있게 됩니다. 이거야말로 이통 3사들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그리고 이를 정부가 도와준 셈이고요. 사실 이통사들은 보조금을 규제해주는 정부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다만 LG유플러스나 SK텔레콤과 달리 KT는 올해 2분기 고전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사실 마케팅 전쟁의 결과라기보다는 4세대 LTE로의 진화가 늦었던 것, 즉 새로운 먹거리를 만드는 데 늦었다는 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자, 이제 이통 3사가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이 된 것 같습니다. 이통 3사도 이 같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겠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수익을 내고 싶은 기업의 생리와 경쟁사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은 또 다시 이통 3사를 보조금 시장으로 내몰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사실 이통 3사가 속마음을 터 놓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명백한 담합이 될 테니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남보다 더 좋은 서비스, 한 발 좋은 서비스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이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 내는 일일 겁니다. 지극히 단순하지만 가장 현명한 선택, 그런 선택을 하는 이통사들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세계일보 엄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