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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타임] 통신시장과 게임이론

얼마 전 이동통신 시장을 각종 게임이론으로 설명하는 기사를 썼더랬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업종이 어디 있겠는가만, 서로 자해(과잉 보조금 지급)까지 해가며 죽자사자 싸우는 통신시장 구조를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할 방법을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였다.

 

당시 기사에서 동원된 이론은 이렇다. 포화한 시장에서의 뺏고 빼앗기는 경쟁은 제로섬게임, 서로 출혈경쟁을 하며 한번 끝까지 가보자며 싸우는 것은 치킨게임이다. 서로 자금력을 과시하며 상대방을 속이려는 것은 블러핑(공갈)게임이다…. (게임이 격화하면 오인도 있는 법. SK텔레콤과 KT는 LTE 선도•집중 투자로 최근 부채비율이 2배 이상 뛴 LG유플러스가 재정난을 버티지 못하고 금세 손을 들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서로 손해 보는 과잉 보조금 전쟁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으로 설명했다. 죄수 2명이 서로 묵비권을 행사하면 석방, 서로 자백하면 징역 5년이다. 그런데 한쪽만 자백을 하면 자백한 쪽은 석방이지만 묵비권을 행사한 쪽은 징역 10년이다. 죄수 둘이 나란히 묵비권을 행사하고 나가면 제일 좋겠지만, 문제는 서로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칫 혼자 묵비권 행사하다 상대방이 자백하면, 혼자 ‘독박’(징역 10년)을 뒤집어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 자백하고 징역 5년을 택하게 된다는 게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이다. 통신사들 또한 이렇지 않은가? 서로 보조금을 쓰지 않는 게 유리하건만, 분위기 반전을 위해 한쪽이 치고 나오면 따라가게 된다. 홀로 밀릴 수 없으니 결국 서로 손해 보는 길로 가게 된다. 함께 수익이 악화하고, 함께 규제 당국의 제재를 받으며, 함께 사회적 비난을 뒤집어쓰게 된다.

 

이런 게임이론 기사를 두고, 몇몇 지인들은 사회부 기자 출신 아니랄까 봐 IT라는 전문 영역을 너무 사회부스럽게(사회적으로) 다뤘다는 지적을 했다. 복수의 방통위 관계자들, 그리고 기자 몇몇은 ‘재미있더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고수’는 어차피 대선 앞두고 통신사들 수익이 많으면 요금인하 압박만 받게 되는데, 적당히 함께 욕먹으며, 적당히 수지가 안 좋아지는 게 낫다는 의견을 내놨다. LTE 설비투자를 앞당겨 집행하고 마케팅비를 과잉 집행해, 이익을 낮추는 게 정치•사회적 측면에서는 더 이익이라는 말이었다.

  
그럴듯한 얘기였다. 실제 통신사들의 판단이나 생각은 모르겠지만, 외부 상황이 바람이 세게 불 때는 적당히 몸을 굽히며 피해 가는 게 일반적인 처세술이다. 하지만, 아무리 넓게 생각해봐도 통신사들의 보조금 ‘자해 경쟁’은 수긍하기 어렵다. 애플의 아이폰5, 삼성전자의 갤럭시S3과 노트2, 엘지전자의 옵티머스G, 팬택의 베가R3 등 스마트폰 대전을 앞둔 상황인데, 주변에 기기를 바꿀 때가 된 사람들은 선뜻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 다들 사양이 높고 가격도 비싼 만큼, 적당히 때를 기다렸다가 보조금을 많이 주는 통신사와 기기를 선택하겠다는 분위기다. 소비자들의 이런 태도는 통신사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태도를 심어준 게 바로 통신사 아닌가. 통신사들의 ‘자해 경쟁’이 안타까운 이유다.


한겨레 이순혁 기자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