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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타임] LTE와 기다림 - 한겨레 신문 구본권 기자

 

LTE의 속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가끔은 ‘기다림’이 그리울 때가 있지요? 오늘은 여러분께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선물해 드리고자 한겨레 신문 구본권 기자(통신업계 담당)의 ‘LTE와 기다림’이라는 글을 공유합니다. ^^

 

 

“새로운 세상에서는 가끔 즐기셔도 좋습니다.” 산사 인근 대숲에서 LTE 폰으로 <개그 콘서트>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혜민 스님 출연 광고가 화제입니다. 광고의 설정을 보면서 가벼운 궁금증이 생겨났습니다. ‘스님은 그 뒤로 얼마나 자주 개콘을 보려 스마트폰을 찾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이었지요.

 

속세와 거리를 두는 삶을 선택한 구도자야 어렵지 않게 개콘 시청에서 다시 수행 모드로 전환할 수 있겠지만, 장삼이사는 다릅니다. 엔트로피 증가 법칙으로 불리는 열역학 법칙처럼, 일단 진행되면 반대의 방향으로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현상이 있습니다. 나이 들면서 노쇠해지는 것이나 바위가 풍화되는 것처럼 자연계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일들은 비가역적입니다.


상품과 구매나 서비스 선택처럼 인간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영역에서도 자연계와 유사한 비가역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흥미롭습니다. 좀 더 안락하고 쾌적한 상태를 경험한 이후엔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통신 서비스 분야에서 두드러집니다.


LTE 서비스를 쓰려면 새 단말기와 요금제를 구매해야 하지만, 일단 그 속도를 경험하면 LTE 이전 서비스로 돌아가기가 어렵지요. 대기할 필요 없이 터치하면 즉시 휙 나타나는 인터넷을 맛보면 이용자의 눈높이가 달라집니다. 3G망과 Wifi망을 수시로 선택하면서 웹 페이지가 뜨기를 기다리던 것은 결별해야 할 과거로 여기게 됩니다. 한마디로 LTE는 ‘기다림’ 없는 서비스입니다.

 

 
LTE가 거부하기 힘든 대세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기다릴 필요 없는 서비스에 익숙해지는 것이 한편으론 걱정스럽습니다. 점점 더 속도가 빨라져 기다림이 사라져, 기다림에 대해 나의 자녀 세대는 나와 다른 정서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우려입니다. 기다림은 지루하고 불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기다림도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막여우는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었지요.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구본권 <한겨레> 경제부 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