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자책! 읽어는 보셨나요?

아마도 모르시는 분들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합니다만, 4월 23일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 책의 날입니다. 마음의 양식인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좋은 책은 서로에게 추천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름이 혹시 바뀌지는 않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날이 하나 지정되지는 않을까요?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전자책(e-Book)" 때문입니다.

 

 

요즈음 전자책에 관심을 두는 분들이 제법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 지금껏 살펴본 어떤 IT기기보다도 전자책은 극단적인 팬과 안티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먼저 부정적인 사람들의 의견입니다. 가장 많은 분이 말하는 전자책의 단점은 "그래도 책만큼은 뭔가 잡히는 것이 있어야지"하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자책에서는 책을 읽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종이가 주는 질감과 존재감을, 결코 전자책이 그것을 대신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책을 어디쯤 읽었는지 알기 어려워, 이른바 성취감이 떨어지는 것도 단점입니다.

 

또 다른 단점은 좀 뚱딴지같습니다만, 공간의 제약입니다. 전자책은 물리적으로 전자서점의 하드디스크에서 통신망을 통해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전자책의 물리적 메모리로 옮겨집니다. 이 물리적인 메모리가 책장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물리적 메모리는 결코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제약이 있습니다. 책이 한 권, 한 권 늘어나면 언젠가는 메모리가 가득 찹니다. 즉 책을 책장에서 빼놓듯, 메모리에서 지워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 전자서점은 이미 한 번 팔았던 책은 다시 내려받을 수 있고, 또 이럴 때 쓸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이책처럼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시 목록을 챙겨보기 전에는 내가 이 책을 다시 보는 경우가 무척 드뭅니다.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한 번 읽고 마는 오락 재의 성격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것이 전자책의 현실입니다.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드문 대신, 가벼운 소설과 만화 등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실제 인터넷 서점의 전자책 베스트셀러 목록은 일반 도서의 그것과는 사뭇 차이를 보이는 것이 좋은 증거입니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많은 이들이 장점으로 생각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 전자책부분 2013년 4월 베스트셀러 목록>

 

많은 소프트웨어 설명서에는 "이 소프트웨어는 마치 한 권의 책처럼 사용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책 하나를 동시에 두 명의 독자가 읽을 수 없기에 쓰는 표현입니다. 전자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동시에는 물론이고, 다 읽은 책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주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종이책에서는 아주 쉽고 별것 아니었던 것이죠. 비슷한 이유로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거나, 다 읽은 책을 중고로 팔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북카페도 전자책만으로는 어렵죠. 그나마 최근에는 전자도서관에 관한 연구와 투자가 이어지면서, 대여에 관해서는 제한적이나마 이뤄지고 있기는 합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점은 바로 눈이 아프다는 점입니다. 정확히는 눈이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자책을 처음 읽는 이들이 느끼는 이질감과 더불어 정독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안 그래도 피곤한 눈이 더욱 혹사당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책을 뭘 좀 적어둔다든가, 아니면 밑줄을 그어두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 선보이는 전자책은 이런 부분은 상당 부분 해결되고, 심지어 정리하고 찾는 기능을 제공해서 더는 단점으로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전자잉크가 발전하면 이렇게 될까요?>

 

가독성 역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자잉크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캡슐을 이용해서 흑과 백을 만들어내는 전자잉크는, 기존 액정과는 달리 한 번 입자를 이동시키면 전기가 없어도 화면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즉, 따라서 페이지를 넘길 때 빼고는 전기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화면이 어둡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뜩이나 찾기 어려운 동네서점과 독특한 책을 출간하던 중소형 출판사가 사라지고, 거대 제작사 및 유통사의 독점이 심해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전자책 시장이 훨씬 발달한 미국 시장에서 전자책은 사실상 아마존 킨들과 아이패드의 독점 구조로 변하고 있습니다. 하드웨어만 아니라, 콘텐츠 유통까지 두 회사를 통하지 않고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이제 장점을 들어 볼까요?

 

저에게 첫 번째 전자책은 다름 아닌 성경책이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성경책은 무척 두껍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에 담긴 성경책은 단 1g의 무게도 늘어나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 단점과 이율배반적으로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자책의 엄청난 장점입니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나무 몇 그루를 잘라야 한다는 환경적인 문제는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벼움을 장점으로 하는 휴대성은 전자책만의 장점입니다. 여행이나 출장을 많이 다니는 분들이라면 바로 실감하실 겁니다.

 

<메모리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수백 수천 권의 책을 기기 하나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연결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궁금한 점이 있게 마련인데, 사전이나 추가 색인과 바로 연결됩니다. 아동도서나 교과서라면 다양한 멀티미디어 예제와 바로 연결할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처럼 통신 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이는 더욱 큰 장점이 됩니다. 물론 독서를 공부로 연결하는 일부 학부모님들께는 적잖은 걱정거리입니다.

 

내가 책이 아니라, 책을 나에게 맞출 수 있다는 점 역시 상당한 강점입니다. 눈이 좋지 않으신 어르신 분들은 글꼴을 좀 더 키우고, 어두운 것을 좋아하신다면 배경을 어둡게 하고 흰 글자로 만들어 읽기도 문제없습니다. 흰 종이에 검은 글씨만 보았던 예전 책과는 사뭇 다른 것이지요. 심지어 클라우드를 이용하면, 하나의 기기에만 얽매이지 않고, 이런저런 다양한 기기를 옮겨 다니며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기기에 따라 다르지만, 어두운 곳에서 굳이 스탠드를 켜지 않아도 됨은 물론입니다.

 

쉽고 편하게 책을 살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쇼핑이 유독 발달해서, 어지간한 책은 주문한 다음 날, 심지어 당일 배송을 뽐내기도 합니다만, 주문과 동시에 책을 내려 받아 읽을 수 있는 전자책과는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물리적인 제약이 없으므로, 전국이 아니라 좋은 콘텐츠라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도 쉽고 편하게 책을 팔 수 있습니다. 유튜브가 싸이(Psy)를 월드 스타로 만들었듯, 국경이 없는 전자책에서는 정보의 유통이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출처 Pew Research Center>

 

이미 미국 시장은 전자책이 주류로 자리 잡은 모양새입니다. 리서치 기관의 자료를 보면 작년 한 해 전자책을 읽은 16세 이상 미국 성인은 23%에 달합니다. 2011년 조사결과가 16%이었으니 제법 많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시장의 이야기입니다. 아마존이 주도하는 킨들과 아이패드라는 두 개의 기기가 하드웨어 시장을 주도하고, 종이책과 거의 동시에 전자책이 나오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전자책은 나온 것보다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을 찾는 것이 빠를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영문 폰트보다 상대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2바이트라는 기술적인 문제나, 여전히 높은 불법 복제율 등, 이 땅에서 전자책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전자책은 결국 종이책을 밀어낼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MP3가 LP와 Tape를 대신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책에서 중요한 것은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그 안에 담긴 콘텐츠이지, 어떤 그릇에 담기는지는 결국 부가적인 문제이고, 단점을 압도하는 수많은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점 역시 앞으로 기술발전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문제입니다. 아직은 종이책보다 상대적으로 싸지 않은 값 또한, 보급률에 따라서는 상당 부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이쯤에서 하나 고민되는 것은 이제 전자책이 집집이 보급되면, 얼마 전 이사할 때 신기한 솜씨로 책을 정리하시던 이삿짐센터 분의 솜씨를 다시는 구경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대신 읽지도 않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전시용으로 두었던 책꽂이가, 이제 여러분의 전자책으로 들어올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아 보입니다. 그때쯤이면 전자책의 날도 만들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