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국내에 서비스를 시작한 지도 2년하고도 반이 지나가고 있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시작된 이 스트리밍 서비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자리를 잡았고, 단순한 관심을 넘어 하나의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를 다져가고 있다.
넷플릭스의 인기는 각 나라의 콘텐츠 상황과 시기 등과 예민하게 맞물린다. 물론 그 대중화의 가장 큰 발단은 LTE를 비롯한 모바일 네트워크와 스마트폰의 보급에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모바일 시대가 꽃피운 콘텐츠 플랫폼
애초 미국에서 넷플릭스의 시작은 비디오 테이프 대여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인기가 본격적으로 불 붙은 것은 미국 시장의 비싼 케이블TV를 대신할 수 있는 매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 달에 수 십 달러 이상을 케이블TV에 내야 이른바 ‘제대로 된 미드(미국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시장에서 불과 10달러, 우리 돈으로 만원 남짓한 요금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전통적인 TV 시장 이용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직접 제작되는 콘텐츠가 가장 탄탄한 국가 중 하나다. 워낙 지상파 방송 중심의 콘텐츠 소비가 단단히 자리잡혀 있고, 종합 편성 채널과 케이블TV 등 고정된 콘텐츠 공급자들이 세계적인 콘텐츠를 쏟아내는 환경을 갖고 있다. K팝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어떻게 보면 해외의 콘텐츠는 다소 관심에서 먼 것도 사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를 대변하는 미국 드라마를 비롯해 일본, 중국 등의 콘텐츠를 보는 것은 일부 마니아들의 취미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기존에는 해외의 콘텐츠들이 공식적으로 유통되는 창구가 없다보니 다소 음성적인 경로로 파일이 공유되기도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편리했고, 영상이나 기술적인 면에서도 수준이 높다. 가려져 있던 콘텐츠의 수요가 빠르게 뿌리를 내린 셈이다.
넷플릭스는 상대적으로 요금 부담도 적은 편이다. 특히 UHD 요금제의 경우 4명까지 동시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끼리 함께 이용하면 큰 부담도 없다. 특히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가족끼리도 콘텐츠를 거실의 TV에서 집중적으로 소비하던 것에서 벗어나 각자의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개개인으로 분산되는 환경이 자리를 잡으면서 넷플릭스는 쉽게 자리를 다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화면 큰 고성능 스마트폰이 가장 빨리 퍼지는 시장이고, 네트워크 면에서도 LTE 망이 속도나 안정성 모두 확실히 자리를 잡은 상황이다. 또한 LG유플러스의 완전 무제한 요금제처럼 데이터 사용량에 제한을 두지 않는 요금제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네트워크 때문에 생기는 이른바 공간적인 장벽이 사라졌다. 넷플릭스는 현재 우리의 생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않을 수 없는 플랫폼이 됐다.
콘텐츠 고민의 해답, ‘오리지널’
넷플릭스의 가장 큰 강점은 콘텐츠에 있다. 이용자가 가장 많은 플랫폼이 되면서 넷플릭스에는 콘텐츠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많은 콘텐츠는 다시 가입자가 늘어나는 이유가 됐다. 플랫폼의 선순환 구조가 갖춰지기 시작한 셈이다.
양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지만 넷플릭스가 플랫폼으로 성장하면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업들로서는 다소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미 HBO나 디즈니 등 굵직한 콘텐츠 제작자들은 넷플릭스처럼 자체적인 콘텐츠 유통 서비스를 만들었거나 또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넷플릭스를 벗어나 스스로 콘텐츠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콘텐츠인 만큼 콘텐츠 제작 업계의 경계 어린 시선은 부담스럽게 마련이다. 또한 콘텐츠는 양적인 성장만큼이나 질적인 성장도 중요하다. 넷플릭스 스스로가 추구하는 콘텐츠도 있을 수 있다. 여러가지 조건으로 봤을 때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것만큼 이 상황에 적절한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다. 넷플릭스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그렇게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세상에 등장했다.
그 시작은 <릴리해머>였지만 넷플릭스의 오리지널이 본격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바로 <하우스 오브 카드>다. 가상의 미국 정치 환경을 다룬 이 드라마는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고,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작 능력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넷플릭스의 가입자를 늘리는 데 큰 공헌을 했고, 이제는 넷플릭스를 벗어나 케이블TV나 IPTV 등에 공급되면서 외부 플랫폼 가입자들에게도 넷플릭스를 알리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이제 넷플릭스는 20가지 이상의 자체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을 세웠고 ‘마르코 폴로’ 같은 오리지널 작품은 제작비만 1천억원대에 이른다.
‘범인은 바로 너’ 속 넷플릭스의 가능성과 전략
최근 가장 눈여겨보는 넷플릭스의 프로그램은 ‘범인은 바로 너’다. 콘텐츠 자체의 재미를 둔 평가는 둘째 치고 넷플릭스의 전략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 안재욱, 이광수, 박민영 등 국내 TV스타들을 중심으로 만든 추리극이다. 중요한 부분은 바로 장르인데, 대본 중심의 드라마와 자유로운 예능의 중간 그 어느 한 곳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가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진출하는 지역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범인은 바로 너’의 경우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출연료에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될 만큼 쟁쟁한 스타들이 꾸준히 등장한다. 팬들을 끌어모으기에 유리하다. 또한 한류 콘텐츠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또 한가지는 넷플릭스 콘텐츠의 다양성이다. 그 동안 넷플릭스는 영화, 그리고 드라마, 다큐멘터리 장르가 주를 이뤘다. 그 외에는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스탠드업 코미디가 인기를 누렸는데, 언어 중심의 이 코미디는 역시 시장이 한정되는 부분이 있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몇몇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반응도 좋다. 그리고 결국 넷플릭스가 한국 스타일의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었다는 점은 콘텐츠의 다양화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콘텐츠는 다소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콘텐츠가 많은 넷플릭스 속에서 빛을 발휘한다. 때로는 가볍게 스마트폰을 들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던 입장에서도 반갑다. 대부분의 국내 예능 프로그램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아가게 되는데 콘텐츠 제작에 아낌없는 넷플릭스의 꼼꼼함이 이 프로그램을, 혹은 또 다른 예능 장르를 꽃피워낼 것이라는 다양한 기대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