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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이기, 가끔은 내려놓으세요

우리나라의 통신 네트워크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SK텔레콤이 세계 첫 롱텀에볼루션 어드밴스드(LTE-A)서비스를 시작했고, 이어 LG유플러스가 세계 최초로 LTE-A에 음성까지 LTE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100% LTE' 서비스를 상용화했습니다.

 

통신의 역사로만 따지면 우리보다 훨씬 앞서있는 미국이나 유럽에 가보면, LTE는 커녕 3세대(3G) 망도 잘 안 터져서 속 터지는 경우가 많죠.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나라의 통신 인프라가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망만 발달한 게 아니라 스마트폰 보급률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입니다. 시장 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67.6%로 2위인 노르웨이(55.0%)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습니다. 이 정도면 통신 강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망의 고도화,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바로 스마트폰 중독인데요. 지난 해 스마트폰 중독률은 11.1%를 기록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 10 명 중 1 명은 중독 상태라는 거죠. 저도 가끔은 문자가 안 와도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린 것 같은 착각을 하고, 혹시 문자나 통화가 오진 않았나 자꾸 확인해 보게 됩니다. 제 친구는 1,000만 명 이상이 다운로드 받았다는 게임에 푹 빠져 요즘 정신을 못 차리고 있죠. 눈을 감아도 게임판이 보인다나요.

 

이렇게 스마트폰에 빠져있다 보면 기억력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 일보가 서울 직장인 100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가 스마트폰을 쓴 후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답했습니다. 또 두 명 중 한 명은 자신이 '디지털 치매'일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족들의 전화번호조차 기억 못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겨죠. 여러분은 전화번호 몇 개나 외우시나요? 혹시 어제 점심에 뭐 드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아니신지?

제가 문명의 이기인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자고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문명의 이기를 문명인답게 현명하게 활용하자는 얘기를 드리고 싶은 겁니다.

 

얼마 전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닳는 덕분에 지하철 플랫폼 내 편의점에서 잡지를 한 권 사 읽었는데 활자를 읽는 맛이 쏠쏠하더군요. 초고속 데이터 통신 시대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대신 책이나 신문을 보는 풍경이 가끔 그립습니다.

 

세계일보 엄형준 기자